싸이에 관한 고민
2004/3/10에 다음시맨틱웹카페에 썼던 글.
지금도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하는 글이라 다시 올려본다.
물론 내용적으로는 유행이 지난 것들도 있지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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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에 관한 고민 (2004/03/10)
싸이가 한국을 뒤덮기 시작한지 여러달이 지났다. 하루 수백만명이 다녀가고 있으며, 수백만 페이지가 업데이트 되며, 수백만 사진이 올려지고, 수억개의 페이지가 읽히고 있다.
근데 나는 아직 미니홈피 하나 없다.
이유? 두려워서이다. 직장 생활하랴, 카페 활동하랴, 종교 활동하랴, 관계 유지하랴.. 하루가 30시간이길 바라는 나에게 싸이질이란.. 아쉽게도 럭셔리로만 들린다.
1999년에 카이스트 출신 5명에 의해 “일촌"이라는 개념에 비즈니스의 승부를 걸었던 싸이월드. 2002년 당시 커뮤니티의 황제였던 프리챌의 유료화 정책의 실패와 디카의 상용화는 싸이의 성공에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물론 최근에는 네이트와 손잡은 것이 서로 엄청난 효과를 주었다.)
시맨틱웹을 공부하다 싸이를 보니 일촌으로 대표되는 “관계성“이라는 성질의 힘을 느끼게 됐다. 인간은 세상에 처음으로 눈을 떠서 어머니와 관계성을 가지게 된다. 그후로도 인간-인간의 관계를떠나 수많은관계를 형성하며 살게된다. 국가와 나와의 관계, 나와 사회와의 관계, 나와 내가 열정을 가진 분야와의 관계, 나의 영혼과 나의 육체와의 관계, 심지어는 당신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과 나의 심장 박동 수 사이의 관계 등등..
그중에서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의미를 두는 것은 아마도 처음에 언급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다섯명은 용케도 그 부분을 정확하게 공략했다.
싸이랑 시맨틱웹이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
RDF의 특성을 가장 잘 대표해주는 예로 급부상하고 있는 일종의 프로젝트 또는 시맨틱웹의 적용분야가 있다. RSS도 아니고 더블린코어도 아니다. 이는 바로 “FOAF“라 불리는 프로젝트이다. FOAF은 “Friend of a Friend", 즉 친구의 친구를 뜻한다. 왠지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개념이다.
90년대 말 닷컴 붐이 온 세상을 덮을 때 “Six Degrees"것이 유행했었다. 물론, “www.sixdegrees.com“이라는 회사도 있었고 한때는 미국에서 유명했는데 얼마가지 못해 망했다. (그 중에 내 친구도 있었는데 그냥 학교로 돌아갔다.) 그들이 주장하던 것은 어느 유명한 사회학자의 연구결과에 근거한 것이었는데 바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6도(degree)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사람이 1도,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이 2도, 그 사람이 또 아는 사람이 3도… 이런 식으로 나아가다 보면, 평균적으로 봤을 때,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이라도 나와는 6도 (또는 싸이의 개념으로 6촌)의 거리로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왠지 온 세상이 작아 보이고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긍정적 소망을 가지게 된다. “You’re closer than you think"라는 그들의 슬로건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닷컴은 소망이 있었고 무너졌다. 비슷한 종류의 막연한 소망을 가졌던 sixdegrees.com 역시 망했다.
싸이는 큰 경영적 실수가 없는 한 아마 그런 일이 없을 것 같다.
디카가 너무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는 개인 사생활 침해이다. 나야 6학년때 친구 사진 하나 찾아서 보는 것이 아름다움일 수도 있으나 동시에 나쁜 마음을 품은 누군가가 내 사진을 그만큼 쉽게 볼 수 있고 변형, 조작해서 인터넷에 뿌릴 수 있다는 것, 걱정 안 할 수 없는 문제다.
싸이를 아마 이번 주에 시작하게 될 것 같다. (불행히도… 이러면 안되는데 ㅠㅠ) 그동안 디카로 찍어놓은 사진이 너무 많아서,그리고 내가 잊고 지내왔던 어떤 누군가가 나를 찾아서 방명록에 글을남겨주기를바라는 “막연한 소망"이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팀버너스리가 웹을 고안해 냈을 때, 세상이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5명이 싸이를 고안해 냈을 때, 한국이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근데 이렇게 변했다. “관계성” 때문에.아마 같은 이유로 “FOAF"도 성공을 할 것이고 시맨틱웹 최초의 killer application 이 될 것이다.
관계성.
바로 이 인간의 본성 때문에 나는 오늘 밤도 “To Cy or Not To Cy” 하나를 놓고 고민하며 잠을 설친다.